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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식(安昌植) 글의 상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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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안창식(安昌植)
부서명 전체관리자 연락처
등록일 2014-12-17 조회 1960
첨부
 
순흥인 안창식은 고려조 좌찬성 문성공(左贊成 文成公) 안유(安遊)의 후예로 효행으로 이조 참의(吏曹參議)의 증직을 받은 경양(璟良)의 손자이다. 그는 헌종 무술 2월에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네 살 때에 할아버지가 그의 재주를 시험하기 위하여 글을 지으라 하 니 곧 「사람의 소리에 산이 운다」하고 말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러나 집이 가난 하여 공부를 계속하지 못하였다.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그때 판서였던 이건필이 그 의 재주와 효성이 아까워 벼슬 자리를 천거하였으나 늙은 부모를 봉양하기 위하여 이를 사 양하였다. 갑오 동학운동 때 홍주성이 동학군에게 포위되어 위급하게 되자 군사를 모집하여 초토사(招討使)였던 이승우를 도와 평정하였다. 이에 이승우가 조정에 보고하여 벼슬을 내 리도록 하였으나 끝내 사양하였다. 을미년 8월 국모의 시해사건이 일어나자 창식은 그의 아들 병찬에게 “나는 늙어 힘이 없으 나 뒤에서라도 도울 터이니 나라를 위하여 의병을 일으켜라” 고 하였다. 이에 병찬은 채광묵 과 같이 수백명의 의병을 모집하여 홍주성에 들어갔다가 당시 이승우의 배신으로 실패하여 이승우에게 김복한 등과 같이 체포되었다. 창식도 아들과 같이 체포되어 홍주옥에서 서울 로 이수되어 형을 받았으나 고종의 특사로 다음해 병신년 봄에 석방되었다. 그 후 날로 기울 어지는 국사를 걱정하다가 을미년 11월1일 홍주 다동에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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