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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李晟) 글의 상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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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성(李晟)
부서명 전체관리자 연락처
등록일 2014-12-17 조회 2146
첨부
 
이성은 고려시대에 연경궁제학(延慶宮堤學)이었던 이기종의 장자로 태어났다. 천성이 어질 고 총명하며 부모 에게 효성스러울 뿐 아니라 특히 경서에 능통하여 당시 사람들이 오경사라고 부른 것이 호 가 되었다고 한다. 과거에 올라 처음에는 제주란 벼슬에 있다가 삼척도호부사(三陟都護府使)와 수원녹사(水原錄司)라 되고, 이 어서 국자박사(國子博士) 합문지후(閤門祗侯)에 임명되고 좌사보(左司補)가 되어 서성(西省)에 입직하였으 나 당시고려의 국정이 어지러워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홍주에 내려와 있었다. 원나라 연경 에 있던 공민왕이 그가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 것을 알고 내서사인(內書舍人), 전의부령(典儀副令), 예문응교(藝文應敎)에 승진 시켰다. 그러나 부임한지 얼마 안 되어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갈 뜻을 밝히 니 조정에서 민부상 서(民部尙書)의 벼슬을 내리면서 그의 뜻을 허락하였다. 이성계가 왕위에 오른 후 여러 차례에 걸쳐 칙서를 보내어 조정에 나오기를 기다렸으나 종 시 회답이 없어 태 조가 친히 나아가 그를 일으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불러 사절하였 다고 한다. 금생려수(金生麗水)라 한들 물마다 금이 나며. 옥출곤강(玉出崑崗)이라 한들 산마다 옥이 나며, 여필종부(女必從夫)라 한들 남편마다 좇을 수 있을 것인가. 태조가 이 노래를 듣고 그 뜻을 돌릴 길이 없음을 알고 그 집을 떠나면서 이 근처의 산과 전 압을 가리켜 자손 들의 녹으로 내어주게 하였으나 받지 않았다 한다. 태조 정축 4월초 8일 74세로 세상을 떠났 다. 그의 묘는 장 곡면 행정리 소곤리에 있다. 이태조가 그의 죽음을 듣고 자헌대부(資憲大夫) 예조판서(禮曹判書) 겸지(兼知) 의금부사(義禁府事) 오위도총부 도총관(五衛都摠府 都摠管) 안평백의 증직이 있었다. 그의 큰아들 제의 호는 야옹(野翁)인데, 그도 고려 때에 진사로 학행의 이름이 있었으며 태 종의 부름을 받았 으나 나가지 않았다. 둘째 아들 기(?)의 호는 매성(梅城)인데 그 역시 태종의 부름을 받았으 나 나가지 않고, 벽제산 아래 매성리에 살면서 매화를 심어 울을 삼고 평생 아버지의 뜻을 받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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