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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설교(鄭卨敎) 글의 상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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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정설교(鄭卨敎)
부서명 전체관리자 연락처
등록일 2014-12-17 조회 1272
첨부
 
정설교는 1896년에 광천읍 내죽리 한 부농(富農)의 집에서 태어났다. 그는 기미독립운동이 일어난 후 김상옥, 박민호, 동향 사람인 윤익중 등과 같이 혁신공보(革新公報)라는 주간지 를 발간하여 서울 시내에 배포했다. 상해 임시정부가 발행하는 독립신문과 대한신문을 신의주에 있는 영국인 아일랜드가 경영하는 동양양행(東洋洋行)을 통하여 서울 남대문 민태 방(閔泰邦)이 경영하는 야마주운송점으로 도착한 것을 배포하다가 체포되었다. 이를 세칭 혁신공보사건이라 한다. 1919년 6월 만주군 정부에서 특파된 한훈(韓焄)과 김동순(金東淳)이 폭탄과 권총을 휴대하 고 잠입하자 그는 윤익중 등과 같이 그해 8월에 만주를 경유하여 서울에 오는 미국의원단 일 행을 환영하기 위하여 남대문역에 나올 조선 총독부 고관들의 암살 계획을 추진하였다. 그 러나 김상옥의 집에서 한훈과 김동순이 경찰에 체포되어 실현하지 못했는데, 이를 세칭 미 국위원단 암살 사건이라 부른다. 윤익중은 수원 사건에관련되어 체포되고, 김상옥은 상해 로 탈출하였으며, 정설교는 경북 영주 학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1921년 11월 김상옥이 안홍과 같이 서울에 잠입하자 정설교는 옛 동지들과 만나 고관들의 암살을 계획하였다. 나 석주의 식산은행(殖産銀行) 투탄사건(投彈事件)과 종로경찰서 투탄사건으로 경찰은 마침 내 김상옥의 입국을 탐지하고 삼판통(三坂通)의 김상옥 매씨 집을 포위하였다. 김상옥은 그 들과 대항하여 경부보 이하 세 명을 사살하고 세 명을 부상시킨 뒤 남산을 넘어 효제동 이혜 수의 집에서 정설교가 밀회했다. 다시 3개월 후에 거사할 것을 약속하고 각기 분산 도피 하였다. 정설교가 집으로 돌아온 후 수백명의 경찰이 김상옥을 추격 포위하자 김상옥은 이 에 대항하여 순사부장 한 명을 사살하였지만 37발의 총탄을 맞고 현장에서 쓰러졌다. 정설교 는 그날밤 자택에서 수십명의 경관에게 포위 체포됐다. 9개월의 예심을 거쳐 2년의 형을 받 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이것을 세칭 삼판통사건이라고 한다. 정설교는 늙어 고 향에 돌아와 있다가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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