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메뉴 바로가기

구국/충의

문화유산 홍성문화자료실 인물 구국/충의

정태복(鄭泰復) 글의 상세내용
『 정태복(鄭泰復) 』글의 상세내용을 확인하는 표로 제목 , 부서명 , 등록일 , 조회 , 첨부 , 내용으로 나뉘어 설명합니다.
제목 정태복(鄭泰復)
부서명 전체관리자 연락처
등록일 2014-12-17 조회 1178
첨부
 
정태복의 호는 오산(?山)이다. 정연조의 차자로 1888년 10월1일 장곡면 신풍리에서 출생하 여, 현직 면장으로 있으면서 광복회원(光復會員)이 되었다. 1919년 2월 18일 공주감옥에서 3 년의 옥중생활을 하였는데 그 사실은 다음과 같다. 경주군 외래면 박상진과 영주군 풍기면 채기중은 의병으로 옥사한 허위(許爲)의 문하생으 로 국권 회복을 결심하고 1916년 3월 천안의 권상석, 칠곡의 손기찬, 영주의 임세규, 예산군 광시면 신흥리의 김한종, 우이견 등과 광복회를 조직했다. 널리 동지를 규합하여 영주의 조 재하. 서울의 김흥경, 포천의 최면식, 괴산의 신양춘, 정운홍, 예천의 조용필, 윤창하, 정진 화, 삼척의 김동호, 천안의 장두환, 유창준, 김경태, 조종철, 유중협, 성달영, 김재정, 청양의 황학성, 아산의 강석주, 성문영, 정우풍, 예산의 김재창, 김재풍, 이재덕, 김상준, 김재묵, 김 재철, 홍성의 정태복 등이 한자리에 `모여 모두 힘을 모았다. 조국의 광복을 위해서는 독립군 의 양성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데 의견을 모으고 이에 필요한 자금을 모금하기로 결정하였 다. 이에 다음과 같은 격문을 전국 부호에게 발송하였다. 我四千年 宗社는 灰燼하고 우리 二千萬 同胞는 奴隸가 되었다. 島夷의 惡政과 폭행은 날이 갈수록 심하니 血淚가 쏟아질 뿐이다. 조국은 광복할 一念 억제할 길이 없어 本會를 조직하 니 同胞들은 힘이 있는 데까지 支援하여 本會의 義旗가 東指하는데 期待하라. 이와 같은 격문을 보낸 다음. 허위의 추천으로 관찰사(觀察使)가 된 칠곡군 북삼면 오태동 의 부호 장승원은 허위의 의계에 좌단(左袒)하지 않고 도리어 방해한 자이니 우선 처단하여 전국의 경종을 울리자는 데 합의한 뒤 정사년 9월 채기중, 유창순, 강순필 등은 장승원을 처 단하고 그 문전에 『日維光復天人是符聲此大罪戒我同胞聲戒人 光復會』란 벽보를 붙여 왜 놈들을 놀라게 하였다. 충남책인 김한종은 박상진과 의논한 후 정태복으로 하여금 격문을 등사하여 충남일대에 발송하도록 하였다. 정태복은 면소에 있는 등사기를 이용하여 등 사한 다음 금마면 김영두를 위시하여 90여명에게 광복회의 목적과 취지를 알려 지원을 요청 하고 정사년 8월 광천면 내죽리 정인교를 찾아가 지원금을 받았다. 한편 김한종은 아산군 도고면장 박용하를 친일분자로 규정하고 동년 12월에 김경태와 임세 규로 하여금 광복회가 발행한 사형선고문을 제시하여 처단함으로써 충남일대의 부호들에 게 경종을 울렸다. 그 후 일경에게 발각되어 회원 전부가 체포되고 정태복은 공주감옥에서 예심을 거쳐 3년의 형을 받았다.

목록

게시판 이전 및 다음 링크 관광_구국충의의 이전글과 다음글을 보여주는 설명하는 표입니다.
다음
다음
홈페이지 총괄부서 :
문화관광과
담당자 :
장용민
연락처 :
041-630-1690
팩스 :
041-630-4242
만족도조사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