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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주(李根周) 글의 상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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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근주(李根周)
부서명 전체관리자 연락처
등록일 2014-12-17 조회 2053
첨부
 
이근주의 자는 문군(文君)이고 청강 제신(淸江 濟臣)의 후예로 전의인(全義人)이다. 그는 철 종 경신년에 홍북면 중계리 홍천에 이거하여 형인 근하와 근상(根商)과 같이 빈곤한 살림을 근근이 이어갔다. 21세 때에 공부를 하기 위하여 공주에 있는 부용암에 갔다. 원래 이 암자 는 심산유곡에 있어, 백주에도 범들이 출몰하여 폐사가 되었는데 그는 삼일 일식을 하면서 홀로 공부하기도 하였다. 을미년 민비 시해사건이 발생하자 그는 김복한, 이설 등과 창의할 것을 모의 추진하던 중 이승우가 배신하여 김복한, 이설, 안병찬 등을 체포 투옥한 데 크게 실망하고 옥중 인사들을 구출하기 위하여 서산방면에서 모병하던 중 옥중인사들이 석방되 어 모병을 중지하였다. 병신년에는 수사 조의현과 다시 창의(倡義)할 것을 결심하고 의병을 초모하던 중 또 조수 사가 체포되어 울분한 심정을 참지 못하였다. 정유년에 내간상을 당하여 지나치게 애통한 나머지 신병으로 오랫동안 신음하던 중 경술년 국변으로 국파민망(國破民亡)하자 마침내 ‘굴욕을 당하고 구차히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깨끗하게 생애를 마치는 것이 당연히 가야할 길이다’ 생각하고 며칠 후에 있을 백형의 회갑을 치른 다음 자결을 결행하리라 마음속으로 다짐하였다. 9월 13일 회갑이 지나 원근 친척들이 흩어진 9월 23일 진목정에서 주과(酒果)를 준비하여 친산에 고유한 후 묘전에 “존화양이 척사부정”이라는 글과 수편의 율시와, 가족에 게 보내는 유서를 남긴 다음 절사하였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일경들이 달려와 유서와 율시 를 압수하여 세상에 전해지지 못하였다. 이 강산이 우리 강산이 아니니 화장하여 줄 것을 부 탁하였으나 가족들은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어 예산군 덕산면 낙상리 선영하에 안정하였다. 을유 해방이 된 후 1958년 9월 홍성 군수 이원량은 청광선생의 순국절사한 정신을 길이 추 모하기 위하여 성헌 임공한주가 지은 글을 새겨 묘 앞에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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