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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규(李南珪) 글의 상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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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남규(李南珪)
부서명 전체관리자 연락처
등록일 2014-12-17 조회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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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당(修堂) 이남규는 한산인 이호직과 청송인 심씨 사이에서 철종 6년 한성부 미동에서 장남 으로 태어났다. 고려시대 목은 이색과 조선시대 산해(山海) 경전(慶全) 등의 거유와 현상의 후예로 어렸을 때부터 경사 제 자백가는 말할 것도 없고 국조의 고사를 비롯하여 학통 당론 관방 풍토 등에 조예가 깊었다. 21세가 되던 해에 처음으로 사마시에 합격한 후 28세 되는 4월에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부 정자에 등용되었 다. 그 뒤 홍문관의 교리 겸 선전관 수찬 형조참의 영흥부사 안동부 관찰사를 거쳐 가선대부 궁내부특진관 에 이르렀다. 41세에 영흥부사로 있을 때 을미년 8월 일본이 민비를 시해하자 벼슬을 버리 고 예산군 대술면 에 낙향하였다. 51세 되는 을사년에 일본이 강제로 망국의 조약을 맺자 통분하여 군신상하가 성을 등지고 일본과 싸워 국권 을 수호하자는 상소문을 울렸다. 병오년에는 안병찬이 홍주에서 의병을 일으켰다가 공주감 옥으로 잡혀간 것 을 알고 당시 공주에 충청도 관찰서리 박모에게 글을 보내어 석방 운동을 하였다. 또한 의병 장 민종식이 홍주 성을 탈출하여 그의 정사인 평원정에 은신하면서 김덕진 등과 같이 의병을 일으킬 모의를 하다가 발각되고 김덕진 등이 체포 공주감옥으로 끌려가자 그 뜻을 이어받아 의병을 일으키기로 결심했다. 53세가 되던 9원 일본이 7조약을 맺고서 고종을 양위시키고 우리나라의 군대를 해산시키 는 등 침략을 노골 화하자 각지에서 의병이 벌떼같이 일어났다. 이때에 왜병 백여명이 평원정을 포위하고 이남 규를 체포한 후 결 박을 하고자 하니 이남규는 “선비를 죽일 수는 있으나 욕을 보일 수는 없다”고 크게 꾸짖었 다. 그리고 스스로 교자에 올라 왜병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공주감옥으로 끌려갔다. 아산군 온양면 평촌에 이르 렀을 때 갑자기 왜 병이 교자를 멈추고 “지금이라도 머리를 깎고 순종하겠다면 살 길이 있으나 반대할 때에는 처단하겠다고 위 협했다. 그는 크게 노하여 ”차라리 죽을지언정 너희들에게 굴복하겠느냐“라고 꾸짖었다. 왜 병이 칼을 들어 치려 하니 아버지를 배종(陪從)하던 아들 충구(忠求)가 앞을 막다가 칼에 맞 아 그 자리에서 죽고 따라가던 김응길(金應吉), 가수복(賈壽福), 이남규도 죽었다. 이러한 광경을 보고 동리 사람 유진원(兪鎭元)이 멀리서 지켜보다가 왜병들이 물러간 후 달 려가서 시신을 지키도 있었는데 난데없이 검은 구름이 시신을 감싸는 기이한 일이 있었다 고 한다. 예산군 대술면 상항리(上項里) 그의 묘소에는 이가원(李家源)이 찬(撰)하고 이석구(李奭九) 가 쓴 비(碑)가 있어 이 사실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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